막 청춘의 절정이 지나갔다
내게 청춘이란 7월의 중순, 평일 오후의 테니스장 같은 이미지다. 뜨겁고 뜨겁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라 코트는 거의 비어 있다. 땅에서는 햇살의 열기가 고스란히 다시 올라온다.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라켓으로 공을 때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한가롭게 들려온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문득 조금 전까지 여름은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절정을 지나 여름이 내게서 막 떠나가기 시작했다고 느낀다. 약간의 아쉬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붙잡고 싶은 욕망은 들지 않는 그런 순간. 내게 청춘이란 그런 것이었다.
내게도 그런 순간을 느끼게 한 시절이 있었다. 1996년이었고, 나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그 전해 여름, 대학을 졸업한 뒤로 나는 취직할 마음은 전혀 없이 번역으로 생계를 이어갈 방법을 알아보고 있었다. 다행히 아는 선배가 편집장으로 있는 출판사에 기획안을 내밀어 번역을 맡게 됐다. 미국 소설가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라는 소설이었다. 1950년대 미국의 청년 두 사람이 차를 타고 북미 대륙을 횡단한 일을 다룬 소설이었다. 지금은 스물여섯 살에 그 소설을 번역한다는 건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물여섯 살에는 그 무엇을 하든 미숙하니까. 그렇지만 그 소설을 번역하지 않으면 아무런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필사적으로 번역에 매달렸다.
1995년 겨울부터 이듬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까지,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 소설을 번역했다. 그때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결혼하지 않은 누나와 나, 이렇게 셋이서 아파트를 하나 빌려서 방 한 칸씩을 차지하고 생활할 때였다. 친구와 누나는 아침이면 회사에 출근했다. 나는 작업할 만한 공간이 없어서 베란다 한쪽 벽에 붙인 책상에서 일을 했다. 책상 한구석에 작은 라디오를 갖다 놓고 하루종일 fm방송을 들었다.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식으로 번역했다. 얼마간 번역하다 보면 어느새 라디오 프로그램이 바뀌었다. 발라드가 나오다가 트로트가 나왔고, 또 게스트가 등장했다가는 dj가 사연을 읽어줬다. 그러다 보면 금방 저녁이 찾아왔다. 하루 동안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얼마나 적은지, 그때 처음 알았다.
봄이 시작되면서 낮은 점점 길어졌고, 그 베란다에사 보내는 시간도 점점 더디게 흘렀다. <길 위에서>에는 여행 경로와 지명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도움을 받으려고 나는 책상 위 베란다 벽에다가 교보문고에서 사 온 미국 지도를 붙여 놓았다. 이따금 번역하다가 나는 소설에 나오는 국도의 번호와 지명을 지도에서 찾아서 표시했다. 내 스물여섯의 봄이라면, 소설 속 두 청년이 뉴욕을 떠나 보스턴, 덴버 등을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할 때싸지 몇천 개의 영어 문장을 옮긴 것으로 기억할 수 있겠다.
그해의 여름은 나머지 분량을 번역하면서 시작했다. 청년들은 아직 두 번의 여행을 더 해야만 했다. 영어 문장과 모니터와 미국 지도를 번갈아 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fm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달콤한 노래들이, 시시껄렁한 잡담들이, 절절한 사연들이 흘러나왔다.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번역은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그에 비례해서 하루는 점점 더 길어졌다. 그런데도 꾹 참고 번역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런 소설을 번역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몰라.' 그런 생각은 나를 앞날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끌었으므로 되도록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엔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ㅜ살아야하는가?'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이런 청춘이라니. 하고 싶은 일투성이인데, 정작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니.
여름도 한복판에 이르러, 뜨거운 햇살 때문에 블라인드를 친 베란다에 앉아 있는 일마저도 버거워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정말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번역을 끝마쳤다.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가 중간을 지날 즈음에는 이걸 다 번역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젊은 내가 하기에 너무 지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삶. 그때 나는 다른 삶을 생각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이것 말고 다른 삶이 존재할 것 같았다. 녹초가 된 나는 소설 속 청년들의 경로를 표시해 놓은 미국 지도를 한참 들여다봤다. '저건 또 무슨 의미일까?'
...
7번 국도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우리는 점심을 먹은 뒤, 하도 덥고 힘들어서 길가의 나무 아래서 낮잠을 잤다. 깨어난 뒤, 그 동네 할아버지에게 포항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5백 리라고 대답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거길 어떻게 가느냐고 걱정스럽게 우리에게 말했다. "하루 만에 갈 건 아니에요"라고 우리는 웃으며 합창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햇살도 많이 기울고 피로도 많이 풀렸기 때문에 우리는 빠른 속도로 출발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여름의 절정이 지나갔다면, 그날 낮에, 우리가 낮잠을 잘 때, 우리도 모르게 지나간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내 청춘의 절정이 지나갔다면, 그것 역시, 아마도.
결국 <길 위에서>는 출판되지 못했다. 7번 국도를 다녀온 뒤에도 내 삶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여름은 지나갔다. 되돌어볼 때 청춘이 아름다운 건 무엇고 바꿔 놓지 않고, 그렇게 우리도 모르게 지나가기 때문인 것 같다.
한번 더 읽기를 바라며 쓰는 글.
이제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리라.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그렇다면 뭘 생각하고, 뭘 할까? 그건 정말이지, 내 자원을 모두 쏟을 가치도 없는 것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제 100살의 눈으로 그 고통을, 고독을,절망을 노려보자. 해서 지금 내가 여기 이곳에 떨어졌다고. 오래도 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도라에몽이 나타나서 지금의 나이로 되돌려 주겠다고 말했다고 치자. 고통고ㅏ 고독과 절망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살 만큼 살아서 우여곡절 끝에 100살로 죽는다. 그렇다면 지금 죽는다규 생각하자. 고통은, 고독은, 절망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여기에서 내 자원을 100퍼센트 점유하고 있는데. 지금 내가 더 많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가능한 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런데 문제는 지금이다.
그래서 어른들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는 셈이다. 금방 답이 나온다. 중학교 시절로 돌어간다면 더 많이 해야 할 일들과 가능한 한 하지 않아야 하는 일들. 한 번도 하보지 않았다면 노트에 적어도 좋겠다. 과거로 돌아가서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우린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생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야기는 정말이지 근사하게 바뀐다. 이야기에 필요한 것들은 더욱 풍부해진다. 두 번째로 소설을 쓰게 되면 군더더기가 거의 사라진다. "다 쓰고 난 뒤에 한 번 더 쓰면 잘 쓸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그러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따위 글을 일기장에 쓰는 대신에 뭔가 다른 재미난 일을 할 게 분명하다. (군인들은 이 말을 무조건 믿어라! 진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웬걸, 그 18개월은 눈깜빡할 사이에 흘러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한 까닭은 방위병으로 복무해야만 하는 18개월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기장에 쓰고 있으니 인생이 밝아질 리가 없는 것이다.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에 나는 일기장에다가 "나는 지금 내 인생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지나고 있다"고 쓴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두 번째로 달린다면 아마도 고통보다는 다른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경험할 것이다. 그걸 아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고통에게 끌려가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더 달리면 그 정도로 집중해야만 하는 고통은 많지 않다는 걸, 사실 고통이란 내가 얼마나 많이 달렸는가를 알려 주는 신호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다. 고통은 우리의 자원을 완전히 점유하고서는 모든 게 소진될 때까지 빨아들인다. 고통이 생기면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해진다.
달리기의 고통이란 앞면은 거울이고 뒷면은 유리로 된 이중창 같은 것이라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달릴 때는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달리고 나면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 매번 그렇다. 그럴 때면 늘 고통의 순간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놀란다. 마찬가지로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결승점에 들어가서 어떻게 달렸는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그냥 이 글을 쭉 읽으면 되니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겠다. 뭐, 그렇게 된 것인데, 여러분들에게도 오늘 글을 거꾸로 읽는 경험을 하게 해 드리겠다.
그렇다면 해 봤으니 이제 그만하자.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이라서. 혼자 자문한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그러다가 아주 무념무상에 든다. 처음에는 골이 아프지만, 나중에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문장을 따라가게 된다. 이거 의외로 재미있다.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을 골라서 맨 뒷부분부터 거꾸로 읽었다. 한 번도 안 해 본 일이 뭐가 있을까, 궁리하다가 소설을 거꾸로 읽어 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나도 한때 비슷한 일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홍상수의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거북함은 바로 그런 일에서 나오니까, 간밤의 술자리를 거꾸로 돌려보는 것.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그 뜻은 참으로 깊어보였다. 눈 내린 날, 밤새 술을 마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의 풍경을 찍은 필름을 그대로 뒤로 돌려서 만든 예고편이었다. 최근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 '북촌방향'의 예고편을 봤다. 이 글은 마지막 문장부터 한 문장씩 다시 거꾸로 읽어야만 뜻이 통한다는 걸 먼저 말해야겠다.
혼자에겐 기억, 둘에겐 추억
나로서는 정말 뜻밖의 일이랄 수 있는데, 요즘 들어서 다른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20대만 해도 세상에 둘도 없는 염세주의자인 것처럼 잔뜩 인상을 쓰고 다녔다. 그때는 인간은 모두 위대한 혼자이니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구할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나부터가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구할 마음을 먹지 않을 테니 남들도 내게 위로를 요구하지 말라고 사전에 먼저 질러 보는 심사였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혼자 책상에 앉아 뭔가를 긁적이게 된 까닭도 그 때문이리라.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뭔가 긁적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 소설가가 되기 전에 나는 날마다 뭔가를 긁적이는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날마다 조금씩 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설가가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행위에는 뭔가가 숨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행위였다. 아하, 사실상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나 자신뿐이라고 여기는 얼치기 염세주의자에게 글쓰기는 그런 식의 효용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달리기 시작한 것도 그런 효용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그 시절, 누군가와 같이 글을 쓴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또 다른 사람과 함께 책을 읽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무리를 지어 운동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혼자 새벽의 공원길을 달리고 이런저런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주위에 갑자기 달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동안에도 나는 동호회는 커녕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달리는 일조차 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사람들을 피해서 나는 낮 12시에 혼자서 달리곤 했다.
사람들이 내게 왜 달리느냐고 물으면, 나는 그냥 달리면 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운동화만 있으면 달릴 수 있으니까. 심지어는 구두를 신고도 달릴 수 있다.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달리고 싶지 않으면 달리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왜 글을 쓰는가는 물음을 받았어도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 내 쪽에서 준비해야만 할 것은 탁자와 의자와 컴퓨터, 그리고 약간의 의지만 있으면 되는 일이니까. 이렇게 말할 때, 나는 달리기든, 글쓰기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건 정말 귀찮아. 그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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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 온 보석바를 보더니 친구도 "어, 보석바가 아직도 나오네"라며 반색했다. 사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만나는 친구였다. 둘이서 어렸을 때 먹었던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한참 떠들었다. 물론 보석바를 먹던 시절의 이야기도. 그때 나는 깨달았다. 추억을 만드는 데는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혼자서 하는 일은 절대로 추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요즘 들어서 자꾸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더 소중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물론 우리는 언젠가 헤어질 것이다, 영영.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난 뒤에 우리가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기댈 곳은 오직 추억뿐이다. 추억으로 우리는 죽음과 맞설 수도 있다. 그때 그러고 보면 박경리 선생의 상가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분의 어떤 일들을 추억하는 사람들이었다.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내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기회야, 인생아.
머리 길러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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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없어 지나가고 나면 잡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마음에 드는 말이다. 안 잡히려고 뒤통수에만 머리카락을 잘라 낸 기회를 상상하면 비록 그 기회를 놓쳤더라도 어느 정도 위안이 된다. 나 같으면 잡히는 한이 있어도 머리카락을 기르겠다. 기회의 친한 친구가 바로 인생이다. 인생의 뒤통수에도 머리카락은 없을 듯. 대신에 그 뒤통수에는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씌어져 있을 것 같다. 멀리서 돌아봐도 금방 알아볼 수 있게 큰 글자로. "기회야, 인생아, 나는 늘 늦게 깨닫지만, 그래서 후회도 많이 하지만, 가끔은 너희들의 뒤통수를 보며 웃기도 한단다. 안 잡을게. 그러니 뒤통수에 머리 길러도 괜찮아."
어쨌든 우주도 나를 돕겠지
...내 생각에 청춘의 시간이 꼭 그렇게 흘러간다. 열심히 뭔가에 빠진다. 그다음에는 갑자기 다 부질없어 보인다. 왜 20대에는 제대로 산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고, 모든 게 갑자기 부질없어 보이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20대에는 결과는 없고 원인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예측한 대로 결과가 나오면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고 생각하고, 그때 제대로 산다고 본다. 우리가 자꾸만 어떤 결과를 원하는 건 그 때문이다. 회사원은 사장을 원하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결혼을 원한다. 정말 멋진 사람,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사람, 사랑받은 만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자기계발서에 써놓은 것처럼,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원하지 않고 20대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까? 그럼에도 20대가 끝날 무렵에 우리 대부분은 알게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지질하며, 자주 남들에게 무시당하며, 돌아보면 사랑하는 사람조차 없다는 사실을.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모든 게 다 괜찮았는데, 왜 갑자기 이런 결과를 얻는 것일까? 그러니 20대 후반이 되면 우리는 모두 샐리처럼 울 수밖에 없다. 그건 아마도 20대란 씨 뿌리는 시기이지 거두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청춘이라는 단어에 '봄'의 뜻이 들어가는 건 그 때문이겠지. 20대에 우리가 원할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원인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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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지 않다. 20대에 우리가 원할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원인뿐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이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대에 나는 세상에서 글을 제일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20대 후반이 되어서 나는 내가 그다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 깨달음이 얼마나 통렬하던지 나 역시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스무 살이 되고 싶지 않아요. 스무 살이라는 건 정말 끔찍했어요."라고 말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건 스무 살의 잘못이 아니다. 우주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20대에 우리는 무엇을 원해야만 하는지를 몰랐을 뿐이다.
20대가 지난 뒤에야 나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최고의 작가가 아니라 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작가가 되는 건 정말 어렵지만, 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매일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얼마 간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내가 쓴 최고의 글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최고의 작가가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최고의 글을 썼다.
간절히 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주기 위해서 온 우주가 움직인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자주 우주는 내 소원과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소원을 말하는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했다면, 결혼이 아니라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해야만 할 것이다. 결혼은 어려울 수 있지만, 아낌없이 사랑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그건 내쪽에 달린 문제니까. 마찬가지로 마라톤 완주가 아니라 매일 달리기를 원해야만 한다. 마라톤을 완주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매일 달리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다.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설명하기 무척 힘들지만, 경험상 나는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다.
갑의 계획, 을의 인생
인생의 일들은 언제나 짐작과는 다르다. 하물며 계획대로 이뤄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계획할 때의 우리는 '갑'의 입장이다. 스킨스쿠버도 배우고, 이탈리아에도 가고... 못 하겠다는 말은 게으름뱅이들의 사전에나 존재한다는 듯이 의욕에 차서 계획을 작성한다. 우리 인생에도 무자비한 사주가 있다면, 그건 계획을 세울 때의 '나', 즉 '갑의 나'다. 그러나 막상 실천할 때가 되면, 우리는 '을'의 처지가 되어 갖은 푸념을 다 늘어놓는다. 왜 그 일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해 이유를 수천 가지도 더 댈 수 있다.
GTD라는 건 그런 '을'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자는 취지에서 나온 시간관리법이다. 'Get Things Done'의 준말인데, 우리말로 의역하자면 '일단 끝내기'가 되겠다. 목표고 계획이고 다 필요없고, 일단 끝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만약 단번에 끝낼 수 없다면(즉 '을의 나'가 갖은 핑계를 늘어놓는다면)일을 잘게 쪼개서라도 시작한 일은 끝낸다. 정 안 되면 손가락만 까딱해도 할 수 있는 일, 예컨대 물 한 잔 마시기 같은 것부터 시작한다. '을의 나'를 잘 설득해서 아주 작은 일이라도 끝내는 습관을 들이면 나중에는 제 버릇 못 버리고 어마어마한 일들 (적어도 세계일주 정도는 되어야만 한다)도 기어이 끝내고야 만다는 이론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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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 일어난 일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빛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다면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또다시 목격하게 되리라. 우리 인생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그런 식으로 우리와 함께 영원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관한 이야기, 마치 우화와도 같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내가 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주라는 공간은 나무의 나이테와 비슷하게 생겼다. 우주의 제일 가장자리에는 우주가 만들어지던 순간의 광경이 담겨 있을 것이다.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우리는 우주의 역사를 모두 보게 되리라. 그 어디쯤에는 은색 표지의 아인슈타인 전기를 읽고는 이 삶에서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은 영원히 이 우주 안에서 나와 함께 있으니 이젠 외롭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소년의 모습도 담겨있을 것이다.
그 전기를 읽으며 나는 천문학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지만, 결국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나는 수많은 좌절과 슬픔과 절망을 겪었다. 그동안 내가 사랑했던 몇몇 사람들은 영영 내 곁을 떠났고, 또 죽기도 했다.
이런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적도 숱하게 많았다. 바깥 쪽에서 지구를 향해 돌아오면서 나는 그런 순간들을 다시 보게 되리라. 어쩌면 이 세상에는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도 보게 되리라. 그런 내게 소년 아인슈타인의 의문은 절망과 외로움과 슬픔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준 셈이었다. 더구나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라고 아인슈타인은 확실히 말했으니까.
김연수에 빠져있을 때.
소설도 소설이지만 에세이도 너무 좋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