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돈을 다 쏟아부어서라도 그녀가 갖고 싶은 것은, 아무도 팔 수 없는 것, 바로 그녀가 아닌 다른 존재였다. 어떻게 옷 가게에 가서 이런저런 사이즈가 아닌 다른 자아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혹은 어떻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여행사에 가서 "나 자신과 멀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라고 말한단 말인가?
약한 쪽이 자신을 드러내고, 강한 쪽은 자기를 절제하기 마련이라면, 인터뷰어는 강한 쪽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강한 쪽이라면 마키아벨리식 책략에 따라 질문을 해야겠지만, 앨리스는 단지 자신이 드러날까봐 두려워서 질문하는 쪽에 서는 것이었다. 그녀도 누군가와 내면을 나눌 필요가 있었다. 다만 누군가에게 세세한 부분까지 들이대는 게 싫었다.
개성이란 읽는 이와 쓰는 이 양쪽이 다 필요한 언어와 같다.
관계의 기반은 상대방의 특성이 아니라, 그런 특성이 우리의 자아상에 미치는 영향에 있다―우리에게 적당한 자아상을 반사시켜주는 상대방의 능력에 기초해서, 에릭은 앨리스에게 그녀가 어떤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가?
아무리 말을 잘해도, 어떤 근거를 들이대며 간청하고 설득해도, 사람들은 결코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확신이 들 때. 그러면 어머니는 생명과 공감의 신호를 보내며 격려하겠지만, 결국 아무것도 모른 채 끝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