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dust
2012. 7. 28. 23:19
화근이라면 분명 그게 화근이었다. 아홉시 뉴스 첫 화면 가득 동백은 그야말로 터질 것 같은 내 가슴처럼 뜨겁게 피어있었다. "바로 저거야."
서른 살의 종점. 함께 살고 있던 엄마는 거의 하루종일 달달 거렸고 막 이른 사춘기에 들어선 딸아이의 예민함, 그리고 어떠한 경우라도 자신의 퇴근 후엔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남편은 내게 '완전주부' 이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삶이 온통 뜨거운 태양아래 널어놓은 행주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젖은 행주를 널어놓아도 몇 시간 후면 감쪽같이 말라버리는 여름날의 행주...
매일이 건조하고 지루하기만 했다.
그 무렵 나는 세월과의 겨루기에서 완전히 지쳐있었던 것 같다. 괜찮은 것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늘 집에 있었고 따라서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 지 모른다. 다음 날 아침 남편도 출근하고 아이도 등교를 마친 후 엄마는 아침잠을 주무시는 걸 확인하고 나는 엽서 한 장을 빠르게 써내려 갔다. 물론 전날 몇 가지의 짐은 싸놓았던 터였고.
나 지금 동백 보러 가. 왜냐구? 난 지금 그걸 보러가지 못하면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아. 내 삶에 피가 돌게 할 거라구. 며칠 걸릴거야. 쓸데없는 상상이나 걱정은 하지 마. 전화는 하지 않을 거야.
사람들은 돌아오기 위해서도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아도 떠난다. 그렇기 때문에 늘 바람 가득한 광야 하나를 가슴에 지니고 살아간다. 교도소에 갇혀있던 죄수가 탈출하는 듯한 비장함(?)으로 나는 뉴스에서 보았던 보길도를 향해, 아니 동백을 향해 내달았다. 결혼 한 지 15년 만에 처음으로 저질러 본 일이었다. 여자 나이 마흔의 길 문앞에서 바라본 삶은 돌아갈 길은 너무 멀고, 마음의 발은 무겁기만 했으며 반대로 남은 길이 가깝게만 보였다.
며칠후 전쟁터에 쏟아지는 융단 폭격 같은 걸 단단히 각오하고 돌아왔는데 남편을 비롯한 식구들의 반응은 온통 걱정하는 것으로 무사귀가가 다행이라며 마무리 되었다.
이후 등단을 하고 시인이 되었다. 그날의 일탈은 내가 시인의 길로 살아가는 데 피를 공급하고 심장을 뛰게 만들어주었다. 다 타버려도 좋은, 다 불살려져도 좋을 오늘을 오늘로 알고 살아가는 것. 열정 없이 늙어간다는 건 삶보다 슬프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살도 뜨겁고 삶또한 뜨겁다는 것도. 앓을 만큼 앓아야 낫는 감기처럼 지금까지 그렇게 아팠던 까닭은 바로 그 날의 동백꽃 앓이였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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