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에, 그해 겨울에, 나는 혼자서 혹은 누군가와 함께 길을 걸었고 무언가를 주웠다. 사소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물로 가져와 간직하며 지냈다. 어떤 것은 추억을 직조해주었고 어떤 것은 계속해서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마음 아픈 것들은 내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내가 그 사물과 만난 것은 너무나 사소한 일이지만 사소한 일들은 마음 아픈 일일수록 운명처럼 커다래진다. 주워 온 사소한 사물들을 내가 간직하는 것은 추억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사소함이 이토록 커져간다는 것을 잊지 않고 싶어서다.
심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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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는 꿈이 아니라 심심함의 세계이다. 심심함을 견디기 위한 기술이 많아질수록 잃어가는 것이 많아진다. 심심함은 물리치거나 견디는 게 아니다. 환대하거나 누려야 하는 것이다.
순교하는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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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란 골똘하면 골똘할수록 풍경으로부터 소외되는 습성이 있다. 신기해하며 골똘히 바라볼수록, 당신은 팽이로부터 소외되고 팽이를 돌리는 아이로부터 소외된다. 폭격하던 비행기가 풍경의 대부분이었던 시절을 지나고 나니, 여유로이 마당에서 팽이를 돌리는 아이가 있는 풍경이 당신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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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천진하기엔 이미 선비이고, 도취에 몰입하기엔 너무나 맨정신이며, 모리배이기엔 너무나 공자이고, 원대해지기엔 너무나 쫀쫀하며, 자유롭기엔 너무나 생활인인 당신은 고스란히 모더니티의 모순을 앓을 수 밖에 없다. 당신은 너무나 어른이라서, 이미 어른이라서 서럽다.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되므로 서럽다.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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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기 한계는 주어져 있다. 이것에 주목하여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을 시선attention이라고 한다면, 자기 한계를 기회로 받아들여 입장을 갖추기 시작하는 지점을 시점viewpoint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야vision라는 것은 시선과 시점이 새로운 작용을 낳는 능력이다. 시선은 관심으로, 시점은 입장으로, 시야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시선을 통해서는 나를 다시 보고, 새로운 시점을 통해서는 당신을 다시 보고, 새로운 시야를 통해서는 세상을 다시 본다.
소통
진심으로 우리에게 소통이 가능하려면, 삶 자체가 비슷해야 한다. 다른 삶을 사는 이는 외국인과 같다. 삶만이 우리를 연결할 수 있다.